과학계의 ‘불편한 眞實’

과학계의 ‘불편한 眞實’

입력 : 2014.09.0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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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울 만한 기술과 기업 못 만든 연구개발 정책 실패 주된 원인은 論文 기준으로 연구자 평가한 것
대학이 ‘교육·연구’ 이념을 넘어 實用 연구와 創業에 관심 쏟아야 과학계가 국가·국민에 봉사할 것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

우리나라 과학계 연구자들은 대부분 성공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 과제의 90% 이상이 성공으로 결과를 맺었다. 연구 과제 하나하나를 보면 무난하게 성공하고, 그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국제 논문 발표 숫자는 매년 8%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국가 연구·개발(R&D) 정책은 실패했다. 연구자 개인은 성공하고, 국가는 실패하는 ‘불편한 진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의 R&D 투자는 매년 1조원씩 증가했다. IMF 외환 위기 시절인 1990년대 후반기의 연간 5조원 수준에서 지금은 17조원으로 커졌다. 절대 액수로 따져도 전 세계에서 7위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따지면 이스라엘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국민의 R&D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총결산해 보면 연구자로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국민이 R&D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유는 장차 먹고살 먹거리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내놓을 만한 기술은 개발하지 못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기업을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산업을 어둡게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상태로 놔두면 과학계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국민의 혈세(血稅)를 먹는 하마가 될 것이다.

낯 뜨거운 현상의 원인은 비교적 간단하다. 정부가 교수와 연구원을 평가할 때 논문만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구제안서를 심사할 때 기준은 논문이다.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할 때도 논문이다. 대학이 교수를 평가할 때에도 논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국제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이라는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SCI 논문 리스트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에 포함되는 학술지에 발표해야 인정을 받는다. 특허나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말뿐이고, 특히 연구실 창업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 십상이다.

결국 대학과 연구자는 모두 SCI 논문이라는 매우 단순한 게임을 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적당히 쉬운 문제를 잡아서 연구하고,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그러면 성공으로 인정받는 아주 편리한 구조다. 공연히 도전적인 주제를 제안하여 실패 위험을 자초할 필요도 없고, 논문이 잘 안 나오는 실용 연구에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다. 이런 것을 보고 배운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하는 행태도 거의 비슷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대와 버클리대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산업단지다. 특히 스탠퍼드대의 창업 활동은 놀랍다. 스탠퍼드대의 졸업생·학생·교수가 창업한 회사가 4만개에 이르고, 이들이 올리는 연매출액은 2조7000억달러(약 3000조원)로 세계 경제 규모 5위인 프랑스의 GDP와 맞먹는다. 우리나라의 GDP인 1조2000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국가 경제와 창조경제를 위해서 대학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스탠퍼드대 교수 중에 SCI 논문이 뭐냐고 되묻는 사람도 봤다.

이제 우리도 대학의 이념을 바꾸어야 한다. 기존에는 ‘교육과 연구’가 대학의 양대 이념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이론 연구로 흘러서 오늘과 같은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제 우리 대학은 실용 연구에도 신경을 쓰고,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창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대학의 이념은 ‘교육·연구·창업’의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이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선진국처럼 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래야 국가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 국가는 창조경제 활성화와 신(新)산업 창출에 갈 길이 바쁜데 대학은 편안하게 논문 숫자 놀음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도 미국 스탠퍼드대처럼 기업을 일으켜 사회에 이바지하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

물론 평가는 해야 하고 논문은 중요한 평가 요소다. 다만 논문 숫자를 합산하고 평균 내고 하는 숫자 놀음으로 줄 세우기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대학과 연구자 평가 기준을 다양하게 바꿔야 한다.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만나서 대학 평가 기준의 변경을 선포하기 바란다. 대학 총장들은 교수들과 창업을 포함하는 대학 이념의 확장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기 바란다. 그리고 국회는 논문에 관한 숫자 놀음을 하지 못하도록 입법으로 뒷받침해주기 바란다. 그러지 않고서는 10년, 20년 후에도 연구자는 성공하고 국가는 실패하는 과학계의 ‘불편한 진실’은 계속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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