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20% 줄이는 신약개발 고속道 뚫는다

“임상前 3단계를 동시에 진행·· 보통 12년 걸리는 개발 기간 7년 반~ 9년으로 줄일수 있어

항암 유전자 7개 발굴, 해외서 먼저 알아보고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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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포를 관찰하는 레이저 현미경 뒤에 선 서울대 김성훈 교수. 

   그는“보통 12년이 걸리는 신약 개발 과정을 3년 이상 앞당기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개발기간 평균 12년. 개발비 1조원. 그러고도 마지막 순간 열에 아홉은 제품화되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상품. 성공하면 한 해 1조원 이상 팔리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초대형 신약)지만 실패하면 쪽박을 차는 혁신적 신약(新藥)의 세계다. 이 시장은 미국·유럽, 소수 일본 제약사들이 장악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넘기 어려운 거대한 장벽이었다.
이런 철옹성을 뚫겠다고 나선 과학자가 있다. 서울대 김성훈 교수(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다. 그는 거대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하고 실패 확률도 높은 고위험·고비용 구조를 대체할 신약 개발 모델을 만들고 있다. 보통 12년이 걸리는 개발기간은 7년 반~9년으로 줄이고, 개발비는 5분의 1로 줄여 영세한 한국 제약사들도 적은 부담으로 도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신약 개발 과정은 크게 4단계다. 먼저 특정 질병, 예컨대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나 단백질을 찾는다. 2단계는 여기에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성분(신약 후보)을 골라낸다. 3단계는 동물 실험으로 독성을 검증한다. 마지막 4단계가 실제 환자에게 테스트하는 임상시험이다. 김 교수는
이 중 6년 안팎이 걸리는 1~3단계를 3년으로, 더 나가 1년6개월로 줄이는 길을 찾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입니다. 앞 부서에서 일을 넘기기 전까지는 뒤쪽 파트는 손을 놓고 있으니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지요. 우리에겐 속도가 빠른 ‘신약
개발 고속도로’가 필요합니다.”

김 교수의 대안은 임상 전의 세 단계를 한 다발로 묶어 동시에 진행하는 ‘융합형 개발’이다. 이를
위해 전자·기계·컴퓨터·생명공학, 물리·화학 분야 과학자들과 손잡고 각 단계에 맞는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구조 분석
기술, 나노 기술을 이용한 초고속 분석 기술, 손톱만한 칩으로 동물 실험을 대체하는 마이크로 유체(流體) 기술 등이 그것이다. 그의 궁극적인
꿈은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자동화해 하나의 기계 안에 집약한 ‘신약 자판기’다.

신약 자판기 개발 말고도 김 교수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새롭고 획기적인 신약 타깃(target)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폐암 치료제를 만들려는 제약사는 폐암의 핵심적인 발병 메커니즘,
구체적으로는 폐암을 유발하는 핵심 유전자나 단백질을 찾아야 한다. 이 유전자와 단백질이 바로 신약 타깃이고, 이 타깃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물질이 신약이다. 김 교수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같은 블록버스터들의 성공 비결은 신약 타깃을 제대로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9개의 새 유전자를 발굴했다. 이 중 7개는 항암제 시장을 뒤흔들 잠재력을 지닌 항암
유전자다. 특히 2005년 세계 3대 과학 저널인 ‘셀(Cell)’에 발표한 ‘p18’이라는 유전자는 암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인체는 몸속
세포가 고장 나면 문제가 생긴 세포의 성장을 중지시키고 DNA를 수리한 뒤 재가동시키거나 수리가 어려운 세포에는 ‘자살 명령’을 내린다. 김
교수는 신체의 이런 항암작용을 좌우하는 p18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지난해엔 새로운 메커니즘의 폐암 유발 유전자도 처음으로
찾아냈다.

그가 발견한 항암 유전자의 가치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세계 4대 제약사인 스위스 노바티스는 2008년
김 교수가 창업한 벤처기업에 100만달러를 투자했다. 노바티스가 최초로 한국 기업에 투자한 사례였다. 이후 국내외 제약사들의 투자가
잇따랐다.

그는 1994년 성균관대 교수로 부임한 뒤 단백질을 만드는 ‘단백질 합성효소’ 연구를 시작했다. 이 효소는 유전자가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에서 유전 암호를 해독하는 역할만 한다는 게 당시 정설이었다. 김 교수는 이 효소가 인체의 생명현상을 좌우하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 과정에서 p18을 비롯해 p38, p43 같은 항암 유전자를 잇달아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과학상'(2003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06년)을 수상했고 지난 7월엔 서울대판 노벨상 프로젝트인 ‘창의 선도 연구자’에
뽑혔다.

의사 집안 출신인 그는 ‘명의(名醫)는 평생 수천명을 살리지만 뛰어난 약은 수백만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서울대
약대에 진학했다. 이후 미국 브라운대에서 분자생물학과 생화학 전공으로 박사를 땄다. 김 교수는 2011년부터 ‘혁신형 의약 바이오 컨버전스
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정부에서 2018년까지 매년 100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초대형 연구단이다. 그는 자신이 뚫은 ‘신약 고속도로’ 위에
혁신적인 신약 타깃들을 올려놓고 800억달러(약 90조원)에 이르는 항암제 시장을 뒤흔들 한국산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에 도전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길성 기자 attic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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