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약물에서 한국형 신약 개발의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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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연구비, 우수한 연구인력, 그리고 많은 실패와 이를 견뎌야 하는 끈기와 집념…… 신약 개발 성공의 전통적인 필요조건이다. 매년 수많은 화합물들이 신약이 되기 위해 도전장을 던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신약으로써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임상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그 동안 약물에 의한 부작용 공포를 여러 차례 경험해 보았고, 때문에 임상 시험을 통과하는 기준은 점차 까다로워 지고 있다. 지난 해 일본에서 출시된 당뇨병 신약을 먹은 환자 중 10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으니, 불평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로 인해 신약을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이 두 가지 더 생겼다. 첫째, 기존의 약물보다 효능이 뛰어나야 하며, 둘째, 심각한 부작용이 없어야 할 것. 그리고 이러한 장벽을 뛰어 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방안이 바로 조합약물이다. 적절한 조합약물은 시너지 효능을 내며, 단일 약물을 처방했을 때 보다 적은 양이 사용되기 때문에 그만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줄어든다. 이러한 조합약물은 연구 분야가 아니더라도, 실제 항암 치료는 물론 고혈압 환자 등을 치료하는 현장에서는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형국으로, 그 효율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입증되었다.

현재까지 약물의 조합은 많은 임상적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적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조합약물을 개발의 패러다임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며 이를 좀 더 예측가능한 개발 형태로 전환하는 일은 아직도 충족되지 않은 수요이다. 합리적인 약물조합을 예측하기 위한 시도들은 그간 다양한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예측 알고리즘들과 발표된 다수의 연구 논문들을 통해 시도되고 있기에 굳이 여기서 나열하지는 않겠다. 다만 거대 제약회사들의 새로워진 공격적 전략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새로운 프로젝트 혹은 제품 개발에 필요한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을 크라우드펀딩 (crowd funding)이라고 한다. 이런 크라우드펀딩은 최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조합의약 개발 분야에서도 일어 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는 크라우드 연구 (crowd research)라는 것이다. 지난 9월 AstraZeneca라고 하는 세계적인 제약사가 영국의 Sanger Institute와 함께 “Drug Combination Prediction DREAM Challenge”라고 하는 online 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의 취지는 간단하다. 누구든지 효과적인 조합약물을 예측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이 대회를 위해 AstraZeneca에서는 자체적으로 생산한 1만개 이상의 조합약물 실험 결과 데이터를, Sanger Institute에서는 cancer cell line별 유전체 데이터를 참여자 모두에게 공개했다. 그 동안 자체 데이터에 대해서 폐쇄적이었던 제약사가 이를 개방해서라도 신약 개발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2014년 한 해에만 30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AstraZeneca의 이러한 행보를 눈 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기서의 키워드는 “예측”이다. 

만약 우리에게 100개의 약물이 있고, 그 안에서 가장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보이는 조합을 찾아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4,950개의 조합을 일일이 테스트 해봐야 한다. 그런데 만약 약물이 1,000개라면? 50 만개 가까운 조합을 모두 실험으로 확인하려면 과연 얼마나 걸리겠는가? 더욱이 동일한 질병이라고 하더라도 유전적 특징에 따라 환자 별로 약물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이러한 다양성까지 고려한다면 “시스템적인 예측”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조합 약물을 예측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이다. 구글 등의 검색엔진에서 특정 단어를 넣고 검색 해보면, 해당 단어와 가장 관계가 높은 웹 페이지들을 순위별로 보여준다. 이런 것이 가능 하려면, 검색 엔진이 어떤 페이지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고, 어떤 페이지가 검색 단어와 일치하는지를 미리 “학습”되어 있어야 한다. 그 외에도 자동차 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일이라든지,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추천해 주는 일, 자동 번역 시스템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여러 분야에 기계학습이 사용되고 있다. 이 때 기계를 정확하게 “학습” 시키기 위해서는 학습시킬 정답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다. 지금까지는 조합 약물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서양 약물들의 조합 데이터만이 대부분 사용 되어 왔다. 그런데 사용 가능한 데이터의 양에도 한계가 다다랐고, 치열한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차별화된 데이터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에 알려진 약물 외에, 지금껏 사용되어 본적 없는 새로운 조합용 약물을 발굴하기 위한 해답은 어쩌면 전통의학에 있을지 모른다. 전통의학은 수천 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단일 약재가 아닌 복합 약재를 처방으로써 효과를 증대시키는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까지 수 만개의 복합 처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데이터를 얻어 신약을 예측•개발하는데 활용할 수만 있다면, 조합 약물로써의 천연물 신약을 개발하게 되는 새로운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얼마 전 중국의 투유유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로 발표되면서, 천연물신약이 다시 한번 이슈화 되었다. 동시에 국내에서도 한의학 기반의 R&D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뜨거워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보유한 풍부한 전통지식과 약학분야, 시스템 생물학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 연구에 집중한다면, 국내에서의 천연물신약 개발이 불가능해 보이지도, 그리 멀지도 않아 보인다. 끝으로 “한약”이 “한국형 신약”이 되는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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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동의보감 사업단 뉴스레터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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