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위협하던 바이러스, 암세포만 콕 찍어 죽인다

(조선비즈=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 2018.06.22 05:58 | 수정 : 2018.06.22 13:46

면역항암제와 쓰면 시너지 극대화

이달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듀크대 연구진이 소아마비 바이러스와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면역 항암제 ‘여보이’를 동시에 처방하면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악성 유방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연구진은 소아마비 바이러스로 악성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입증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나 천연두 바이러스처럼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이 암으로부터 인명을 구할 항암제로 변신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암세포에 감염돼 복제된 후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세포를 터뜨려 죽게 만든다. 제약사들은 암세포를 공격할 다양한 바이러스를 개발하는 한편 기존 면역 항암제와 같이 처방해 시너지를 올리는 방법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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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면에 돌기들이 나 있는 지카 바이러스가 뇌로 가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모습. 최근 인체세포와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지카바이러스는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암세포를 공격해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자료=네이처·미 하버드대·위성턴대, 그래픽=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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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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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노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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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페스 바이러스

 

◇바이러스 공격과 면역 반응 동시 유도

암 연구자들은 1960년대부터 바이러스 항암제 연구를 시작했다. 암 환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갑자기 병세가 호전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항암제는 미국 암젠의 ‘임리직’이 유일하다. 이 약은 성기나 입술 주변에 포진을 유발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이용해 악성 피부암인 흑색종을 치료한다.

이후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암 치료에 동원됐다. 듀크대의 소아마비 바이러스 항암제에 이어 미국 MD앤더슨암센터 연구진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아데노 바이러스로 뇌종양을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 다카라 바이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피부암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프랑스 트랜스진은 우두 바이러스로 전이성 피부암과 직장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UC샌디에이고와 워싱턴대 공동 연구진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지카 바이러스로 치명적인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인체 세포와 동물실험으로 입증했다.

국내에서도 신라젠이 우두 바이러스로 간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마지막 임상3상 시험을 위한 환자 모집이 시작됐다. 코오롱생명과학도 우두 바이러스와 아데노 바이러스 등을 이용한 항암제 개발을 시작했다.

바이러스 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바이러스를 변형시킨 형태다. 정상 세포에는 감염돼도 별다른 해가 없지만 암세포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증식한 후 세포를 터뜨려 죽인다. 특히 바이러스 항암제는 인체의 면역 시스템의 공격도 유도한다. 면역 세포들이 외부 침입자인 바이러스를 없애는 과정에서 암세포까지 죽인다. 일본 도쿄대 도모키 도도 교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터뷰에서 “면역 세포가 바이러스를 제거하려고 하는 과정의 부작용으로 암세포까지 발견하는 것”이라며 “면역 세포들은 미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암세포까지 공격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번 ASCO에서는 바이러스 항암제의 면역 유도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면역 항암제까지 동시에 처방한 성과를 발표한 것이다. 면역 항암제들은 암세포가 면역 세포의 공격을 회피하는 과정을 차단해 인체의 암세포 공격력을 회복시킨다. 신라젠도 바이러스 항암제인 펙사벡과 기존 면역 항암제를 같이 처방해 신장암을 치료하는 글로벌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조 단위 인수·합병도

바이러스 항암제는 시장에 나오는 신약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제약업체의 새로운 투자처로 떠올랐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바이러스 항암제 개발 업체에 대한 인수·합병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2일 미국 존슨앤드존슨은 10억달러(약 1조 1053억원)를 들여 암세포를 죽이는 바이러스를 개발한 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2월에는 미국 머크가 3억9400만달러(약 4354억원)를 들여 호주의 바이러스 항암제 개발사를 인수했다.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러스 항암제 개발 벤처들 간의 공동 개발도 활발하다. 화이자는 지난해 바이러스 항암제 개발사인 이그나이트 이뮤노테라피와 손잡았다. 미국 BMS는 영국 프사이옥서스와 5000만달러(약 552억원) 규모의 바이러스 항암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프사이옥서스는 8억8600만달러(약 979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은 지난해 오스트리아의 바이러스 항암제 개발사인 비라테라퓨틱스에 투자했다.

물론 바이러스 항암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지난 ASCO에서는 미국 애리조나대 암센터 연구진이 암젠의 바이러스 항암제 임리직과 BMS의 면역 항암제 여보이를 동시에 처방해 치료 효과가 나타난 비율이 1% 늘어나는 데 173만1558달러(약 19억원)가 더 들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정도면 기존 면역 항암제만 쓰는 것에 비해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최근 항암제 후보로 지카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아직 완치할 치료제가 없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까지 거론되면서 암 치료 과정에서 심각한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의 후앙 푸에요 박사는 포브스지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는 언제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며 “바이러스 유전자 해독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같은 유전자 교정 기술을 이용해 안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1/2018062101980.html?main_hot2#csidx7bdb094c79a7094926b748076db9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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