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프런티어] 집단지성으로 신약 개발하는 ‘타깃 팩토리’

(동아사이언스=이정아기자) 2019년 06월 11일 14:25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은 단백질합성효소로 특정 질환을 치료하거나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기초 연구뿐만 아니라, 학교와 기업, 병원과 함께 협력해 효율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남승준

DNA에 담겨 있는 유전정보는 사본 격인 RNA에 옮겨졌다가(전사) 단백질로 합성(번역)된다. 1958년 영국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센트럴도그마에 대한 가설을 내놓은 뒤 십수 년간 수많은 학자들이 각 과정에서 어떤 효소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밝혀냈다.

그중 하나는 단백질을 만드는 tRNA(운반RNA)에 각 아미노산을 짝지어주는 ‘단백질합성효소(ARS)’다. 몸속에는 아미노산이 20종류가 있고 각 아미노산을 담당하는 ARS가 20가지 있다. 예를 들어 프롤린(P)을 붙이는 ARS는 PRS로, 라이신(K)을 붙이는 ARS는 KRS로, 글라이신(G)을 붙이는 ARS는 GRS로 부른다.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을 이끄는 김성훈 단장(서울대 약대 교수)은 인간의 ARS들이 단백질 합성 외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지난 20년간 이들이 체내에서 세포간 신호를 전달해 암 발생과 억제, 혈관 생성, 면역 활성, 근육 합성, 대사 조절 등 다양한 생명 현상 조절에 관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김 단장은 “ARS는 모든 세포에 존재하고 있으며 환경적 스트레스나 질병에 대해 가장 먼저 인지하고 반응을 한다”며 “연구단은 이런 ARS의 생리학적 특성을 이용해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약물이나 진단용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단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드러그 디스커버리’ 5월 9일자에 리뷰 논문으로 발표했다.

섬유증 치료하는 PRS, 면역항암제 GRS 

ARS는 역할이 각기 달라서 치료할 수 있는 질환도 다르고 치료 원리도 다르다. 지난 5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권남훈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예를 들어 PRS가 과도하게 활성화하면 섬유화가 진행되므로 활성도를 낮추는 약물을 개발하고, 암 전이의 원인이 될 수 있는 KRS는 그 자체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을 만든다”며 “신경성 질환인 샤리코마리투스 병은 GRS의 돌연변이가 관여하므로 그 돌연변이만 표적으로 하는 약물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양실에서 실험 중인 권남훈 책임연구원. 사진 남승준

연구단이 2010년 사업을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9년간 개발해온 신약 파이프라인 중 가장 앞선 것은 섬유증을 치료하는 PRS 기반 신약이다. 이 약물은 올해 대웅제약이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연구단은 면역세포 이동을 막아 섬유증을 치료하거나, 암 전이를 억제하기 위해 KRS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 약물도 개발하고 있다. 이 약물은 동물실험을 거쳐 치료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다.

인간의 ARS는 세포 밖으로 분비돼 여러 생리 조절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을 활용하면 면역 항암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다. 연구단은 그중 GRS를 이용한 면역항암제를 벤처기업인 큐어바이오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ARS 측정하면 패혈증, 암도 조기 진단

김상범 연구원(왼쪽)이 피터 고그나우어 연구원(오른쪽)과 함께 실험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승준 제공

연구단은 ARS를 이용해 치료제뿐 아니라 특정 질환을 진단하는 바이오마커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병원균에 감염돼 전신에 염증반응이 나타나는 패혈증은 기존 진단법으로는 이미 진행된 뒤에야 발견해 사망률이 높다.

김상범  연구원은 “세균이 병원균에 감염됐을 때 가장 먼저 세포 밖으로 나오는 ARS가 트립토판 tRNA 합성효소(WRS)”라며 “WRS가 세포 밖으로 나와 면역세포인 대식세포에게 세균 감염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혈액 내 WRS의 양을 측정하면 패혈증 진단뿐 아니라 치료 예후, 사망률도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제이더블유바이오사이언스에 이전돼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암 중에서도 초기 증상이 거의 없는 췌담도암은 진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연구단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메티오닌 tRNA 합성효소(MRS)를 활용했다. 연구단은 먼저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임상의들과 협력해 MRS로 췌담도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온코태그디아그노스틱스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현재 세계 최초 진단 제품으로 허가받기 위해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훈 단장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ARS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역할만 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이를 이용해 다양한 후보 약물과 진단용 마커를 개발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ARS가 감추고 있는 생리학적 기능을 밝혀 생명현상을 세밀하게 이해하고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 후보 물질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 “타깃 팩토리로 국내 신약 개발 글로벌화” 김성훈 단장 인터뷰

김성훈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장. 남승준 제공

201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은 9년간 ‘집단지성’으로 신약 개발에 필요한 약물 후보물질을 찾아 왔다. 연구단의 특별한 연구개발 과정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하다. 지난해 9월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연구단의 연구 개발 플랫폼을 특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치료용 약물 표적과 물질들을 공장처럼 빠르게 찾아내는, 일명 ‘타깃(표적) 팩토리’다.

김 연구단장은 “국내 제약업계는 최근 많은 도약과 업적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은 혁신 신약 개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특히 약물 표적을 발굴하기 위한 기초과학에 투자할 여력이 적다”며 “그동안은 기존에 알려져있는 약물의 효능을 높이는 쪽에 주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단의 사명은 기초연구가 중개연구, 임상연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신약개발까지 이어지도록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신약 개발 과정은 자동차를 조립하는 공정처럼 순차적이다. 수많은 기초 연구에서 우연히 질병 발생에 관여하거나 치료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 타깃이 발견되면, 이를 활용해 약물 후보물질을 만들고 치료 효과가 있는지 검증한다. 이런 방법은 앞 단계가 끝나야만 뒤 단계 연구를 할 수 있고, 각 연구 개발자가 상호협의하기 어려운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 시행착오도 많이 발생한다.

미국이나 스위스에서는 약물 타깃이나 후보 물질을 찾는 범위가 글로벌한 데다 연구자가 벤처를 설립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덕분에 기존 방식으로도 좋은 신약 후보물질들을 충분히 발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는 아직 기초 연구와 개발을 이어주는 생태계가 아직 충분히 조성되지 않아 연구자들이 기초 단계에서 발굴한 유망한 발견이 논문 발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김 단장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가 신약 개발이 될 것“이라며 ”제약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초 연구가 중개 연구, 신약개발까지 이어지도록 타깃 팩토리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약물이 될 만한 후보 물질을 찾고(약물 타깃 발굴), 어떤 작용을 하는 약물을 만들 것인지 정하고(약물 설계),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을 예측(약물 검색)하고,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검증하는(생체 질환 모사) 등 신약 개발 각 단계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김 단장은 ”오케스트라를 움직이는 지휘자처럼 연구단은 학교와 기업, 병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동시 연구하면서 원활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연구단 중앙연계센터에서 각 프로젝트의 상황을 관리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고려대, 서울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에서 후보물질을 찾아 분석하면 이화여대, 한국화학연구원,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에서 약물 설계와 검색을 하고 서울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립암센터 등에서 동물모델을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임상시료를 활용해 검증하는 식이다.

이 덕분에 기존 방법으로 신약 타깃을 검증하고 후보 물질을 개발하는 데 평균 6년 이상이 걸렸다면 연구단의 시스템에서는 그 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연구단에서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신약과 진단 파이프라인이 10개 이상 진행되고 있고,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벤처기업도 5개 나왔다.

김 단장은 ”기존에 없던 신약을 개발하려면 다양한 기술과 의견을 수렴하고 적용하는 개방형 연구가 필요하다“며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타깃 팩토리를 구축해 전 세계 바이오업계와 함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문: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28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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