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단장의 바이오콘 플랫폼, 전 세계 바이오업계 주목

특집·르포 45th anniversary | 대한민국 과학 연구의 최전선

기초연구부터 신약개발까지 바이오콘 플랫폼에 전 세계 바이오업계 주목

서울대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 김성훈 교수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대학교 의약바이오컨버전스연구단의 김성훈 단장(55·서울대학교 분자의학 바이오제약학과 교수)은 자신의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 11월 4일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였다. 그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1980년대 후반이었다고 한다. 학회 참석차 함께 공부하던 일본인 친구와 프랑스에 갔다. 그 시절 귀국과 해외 체류를 놓고 갈등하던 김 단장은 일본인 친구와 프랑스의 해변을 거닐다 고민을 털어놨다.
   
  “(약학을 연구하기에) 한국의 연구 환경이 많이 열악한데 내가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일본인 친구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왜 너여야 하지? 네가 기반을 잘 닦아놓아서 후학 중에 성공한 학자들이 나오게 하면 되잖아.”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인 것 같아서 더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교수는 학자로서의 연구와 동시에 어떻게 하면 후학을 양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게 2010년 출범한 서울대학교 의약바이오컨버전스 연구단이다. 연구단은 영어 이름인 ‘MedicInal Bioconvergence Research Center’의 약자를 사용해 바이오콘(Biocon)이라고 부른다. 바이오콘은 순수의약기술에 바이오 및 나노산업을 융합, 비용과 기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신약개발을 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을 한다. 플랫폼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본인들의 연구를 신약개발로까지 보다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김 단장은 바이오콘의 비전을 ‘타깃 팩토리(Target Factory)’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질병치료에 필요한 타깃이 되는 물질의 기능과 병리적 연관성을 연구해서 신약생산이 가능한 단계까지 연결해준다는 의미에서다. 일반적으로 신약개발 과정은 ‘타깃 발굴’ ‘약물 검색’ ‘질환 모사’ ‘약물 설계’ 등의 연구단계와 이후 전임상과 임상을 거치는 개발단계로 나뉘어지고, 이 모든 단계가 자동차 조립과 같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선형구조다. 앞 단계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최소한 10년과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랜 연구와 실패에 따른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획기적인 신약개발은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바이오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김 단장은 “신약개발과 관련,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나 조금 더 오랜 시간 연구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기술의 혁신 및 ‘IT’ ‘NT(나노 테크놀러지)’ 등 다른 영역과의 통합 및 학교, 기업, 정부, 병원 등 각기 다른 조직 간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신약 개발은 연구실 등에서 수많은 임상시험을 거쳐 개발한 약을 제약회사에 가져가 이 기술을 살 것을 제안하고 회사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럴 경우 연구한 측도 손해지만 제약회사도 자기들에게 꼭 필요한 기술은 그게 아닌데 무턱대고 연구하는 측에 그걸 개선해 다시 가져오라는 말도 못했었습니다. 현 의약품 개발 프로세스가 임상단계 혹은 시장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 단장은 타깃 발굴과 약물 후보물질의 작동원리를 임상시험 전에만 충분히 검증하면 실패율이 낮아질 거란 생각에 기초연구부터 신약개발까지 하나로 묶는 플랫폼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이오콘은 신약개발 타깃 발굴에서 후보물질 도출까지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연계해서 연구에 소요되는 비용 및 기간, 성공 확률 등을 획기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고효율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신약개발 플랫폼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최초여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오융합 연구의 혁신성은 바이오콘만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필립 샤프를 비롯한 12명의 MIT 석학들은 2011년 1월 “바이오 융합이 분자세포생물학의 발견과 인간게놈지도 완성에 이어 제3의 바이오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기초연구 자체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신약개발로까지 잇는 하나의 플랫폼 개발은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기초만 잘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기초연구 결과를 응용으로 끌고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기초과학의 결과가 응용까지 연결되어 사람을 살리는 치료제가 개발되는 것을 몸소 이 나라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의 꿈입니다.”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바이오콘은 2010년 향후 9년 동안 20여개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나선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바이오콘 안에서는 항암제와 면역질환 등의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연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50년간 기초연구는 튼실하게 이뤄졌지만 아직 정복하지 못한 암 치료제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바이오콘 설립 이후 항암제 개발에 매해 한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2011년에는 ‘AIMP2-DX2’라는 폐암 유발인자를 발견했으며 이를 억제하면 폐암이 억제되는 걸 확인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인체 안에 존재하는 GRS라는 물질이 암세포를 파괴하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GRS는 보통 정상세포 안에서 단백질 합성을 주관하는 효소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바이오콘 연구팀은 체내에 암세포가 발생하면 이를 감지한 면역세포에서 GRS가 세포 밖으로 배출돼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11월 11일경에 발표될 논문 역시 항암제 개발과 관련된 것인데 이 논문은 그 성과뿐만 아니라 연구과정에서도 많은 참가자들이 참여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김 단장은 논문에는 엠바고가 걸려 있어서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보통 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자기 성과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동연구자로 이름 올리는 것을 꺼려하는데 이 논문은 무려 35명의 과학자들이 공동연구자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유명 대학과 제약회사, 다른 나라의 연구소까지도 연구에 참여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구자로 이름을 올린 건 바이오 업계에서는 최초”라며 “화이자에도 이 정도의 데이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콘이 생긴 지 3년이 됐는데 기초연구 단계에서 이미 10개 제약회사가 참여하고 있다”며 “데이터가 쌓이면 더 많은 업체들이 참여하고 그렇게 되면 신약개발이 더 빨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바이오산업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아쉬워했다. 그는 인터뷰 중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안타까움에 대해 토로했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확히 100분의 1이라고 한다. 다른 제조업이 대부분 세계 정상급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바이오산업 육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단장의 설명이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이오산업입니다. 꾸준한 투자와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문화가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예측 가능한 시장에는 투자하지만 위험부담이 있는 사업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성격이 가장 강한 산업이 바로 바이오산업이죠. 세계적으로는 가장 거대한 시장이지만 연구개발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또 품목이 다양해서 ‘블록버스터’급 신약이라 해도 1조원 정도에 불과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이고 국가에 기여한 바가 많지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창조적 제품을 더 잘 만들어서 파는 삼성식 성공이 계속되는 한 ‘크리에이티브’한 과학은 죽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아이러니죠.”
   
  그는 바이오산업을 우주과학산업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최근에 흥행하고 있는 ‘그래비티’라는 영화를 보세요. 거기에 대한민국의 이름이 나옵니까. 미국은 우주에 계속해서 투자하고 인프라를 깔면서도 거기서 돈을 한 푼이라도 벌었습니까. 하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죠. 100년 후에는 엄청난 자원이 될 것을 알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과학이란 그런 건데 우리나라는 그런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실제 투자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좌절감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이오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현재 우리나라 순수과학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한다.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리는 논문 중 50% 이상이 바이오에서 나오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선도과학자 중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바이오를 연구한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 뭐하냐 이거죠. 신약개발과 같이 산업과 기술로 연계가 안 되면 저희는 그냥 개인 명예만 쌓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가끔은 차라리 연구를 아예 못하는 것이 나은 게 아닌가 할 때도 있습니다. 모르면 차라리 나으니까…. 세계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이게 앞으로 어떤 규모가 될지 뻔히 보이는데 개인이 노력한다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 마냥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나마 김 단장이 바이오콘을 만들고 뒤늦게나마 세계에서 주목받는 연구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업단이 미래창조과학부의 글로벌프론티어사업에 선정되면서 1년에 1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기초연구가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다는 것.
   
  김 교수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면서도 학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기초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신약개발까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후배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까?’ 그와의 인터뷰에는 이런 고민들이 항상 묻어 있었다. 그는 본인이 지금하고 있는 일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비유했다. “지금은 이거 왜 만들어, 왜 산을 깎아서 이 짓을 하지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이오콘이 신약개발 분야에서 고속도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주간조선 박혁진 기자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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